“난포는 잘 자랐다고 했는데 왜 성숙 난자가 없다는 거죠?”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는 여성이라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초음파를 볼 때마다 난포가 하나둘 커졌고 난자 채취도 했다. 그런데 채취가 끝난 뒤 병원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미성숙 난자가 많습니다.”
난포가 잘 자랐는데 난자는 왜 덜 자랐을까.
최근 발표된 연구가 이 질문에 흥미로운 답 하나를 내놨다. 문제가 난포의 크기가 아니라 난자 안에서 염색체를 나누는 장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9월 18일 국제학술지 ‘보조생식과 유전학 저널(Journal of Assisted Reproduction and Genetics)’에 발표된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난자가 성숙하지 않았던 여성들에게서 TUBB8이라는 유전자의 변이가 발견됐다. 이 유전자에 문제가 생기면서 난자가 성숙할 때 반드시 필요한 ‘방추체’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난자가 성숙 과정의 중간에서 멈춘 것으로 나타났다.
난포가 컸다고 난자까지 다 자란 것은 아니다
여기서 먼저 알아둘 것이 있다. 난포와 난자는 같은 것이 아니다.
초음파에서 의사가 크기를 재는 둥근 주머니가 난포이고, 그 안에 난자가 들어 있다. 시험관아기 시술에서는 주사를 맞아 난포를 키운 뒤 적절한 시점에 난자를 채취한다.
하지만 난포가 충분히 커졌다고 그 안의 난자가 모두 수정할 준비를 끝냈다는 뜻은 아니다.
난자도 마지막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염색체를 절반으로 나누는 ‘감수분열’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MI라는 단계를 지나 MII 단계까지 도착해야 비로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성숙 난자’가 된다. 정자 한 마리를 난자 안에 직접 넣는 ICSI도 보통 이 MII 난자에 시행한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은 난자가 MI에서 멈춰버렸다.
연구진은 원발성 불임이 있으면서 이런 난자 성숙정지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중국 여성 6명을 분석했다. 이들은 난소예비력이나 호르몬 검사만 놓고 보면 난자가 계속 성숙하지 않는 이유를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였다.
특히 채취한 난자를 보면 문제가 선명했다. 전체 난자의 85.4%가 MI 단계에서 멈췄다. 반면 수정에 사용할 수 있는 MII 단계까지 도달한 난자는 5.7%에 불과했다. 난포는 자랐지만 난자 대부분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난자 안에는 염색체를 옮기는 ‘레일’이 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자리에서 계속 멈췄을까. 연구진이 찾아낸 단서가 튜비비에이트(TUBB8) 유전자다. 이름은 어렵지만 역할은 의외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난자가 성숙하려면 안에 들어 있는 염색체를 정확하게 나눠야 한다. 이때 염색체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염색체를 가지런히 세우고 양쪽으로 나눠주는 아주 작은 구조물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방추체(spindle)다.
기차가 움직이려면 철로가 필요하듯 난자가 염색체를 정확하게 나누려면 이 방추체가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 TUBB8은 그 ‘철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중요한 유전자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번 연구 대상자들에게서는 TUBB8에 변이가 발견됐다.
연구진이 난자를 직접 관찰했더니 정상적인 방추체가 보이지 않거나 심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난자는 다음 단계로 가야 하는데 염색체를 옮길 레일이 제대로 깔리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니 난자가 아무리 기다려도 성숙 과정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어려웠다.
정자를 직접 넣고 난자를 ‘깨워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다음이다.
연구진은 이 여성들에게 ICSI(미세수정), 즉 정자 한 마리를 난자 안에 직접 넣는 시술을 시행했다. 여기에 인공 난자활성화(AOA)도 시도했다.
난자활성화는 정자가 들어간 뒤 난자가 수정 과정을 시작하도록 일종의 ‘출발 신호’를 인위적으로 주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직접 통과시켜 주고, 그 다음에는 난자에게 ‘이제 수정 과정을 시작하라’는 신호까지 준 셈이다.
그런데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수정률은 6.3%에 그쳤다. 배반포까지 자란 배아는 없었고 임상적 임신도 나오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ICSI는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는 기술이고, 난자활성화는 수정이 시작되는 신호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번 여성들의 문제는 그보다 앞선 곳에 있었다. 난자 자체가 아직 정상적인 성숙 과정을 끝내지 못했던 것이다.
정자를 아무리 잘 넣어줘도, 난자를 깨우는 신호를 줘도 난자 안에서 염색체를 나누는 장치 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미성숙 난자가 나오면 ‘TUBB8 검사’부터 해야 할까
여기서는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미성숙 난자가 나오는 일 자체는 드물지 않다. 난소자극 방법이나 난포의 크기, 난자 성숙을 유도하는 트리거 주사의 종류와 시점, 난자 채취 시간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성숙 난자의 비율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한두 번 미성숙 난자가 많이 나왔다고 TUBB8 변이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이번 연구에서 중요한 단어는 ‘반복’이다.
난포는 충분히 자라는데 여러 번의 난자 채취에서 계속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특히 대부분의 난자가 같은 MI 단계에서 멈춘다면 단순히 “이번 자극이 잘 안 됐다”고만 볼 일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질문을 조금 바꿔볼 필요가 있다.
‘난포를 어떻게 더 잘 키울까’가 아니라 ‘이 난자는 왜 마지막 성숙 단계를 통과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이다.
TUBB8 유전자 검사는 이런 매우 선별된 환자에서 반복되는 실패의 이유를 찾는 하나의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고 곧바로 치료법이 생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같은 시술을 반복하기 전에 실패의 원인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앞으로의 치료와 상담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의미가 있다.
6명에서 확인된 결과…모든 난자 성숙장애 설명하진 못해
이번 연구를 확대해석해서도 안 된다.
연구 대상자는 중국 여성 6명으로 매우 적고, 모두 반복적이고 심한 난자 성숙정지를 보인 특수한 환자들이었다. TUBB8이 모든 난자 성숙장애를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난자가 성숙하는 과정에는 여러 유전자와 단백질이 관여하기 때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인이 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동안 ‘난포가 얼마나 잘 자랐느냐’에 가려져 있던 난자 안쪽의 문제를 보여줬다는 데 있다.
난포가 잘 자라는 것과 그 안의 난자가 제대로 성숙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난포는 충분히 컸다. 난자도 채취됐다. 그런데 여러 번 시술해도 난자가 번번이 같은 단계에서 멈춘다면 단순히 ‘난자 질이 좋지 않다’는 말로 끝낼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난자 안에서는 염색체를 정확하게 나누기 위해 수많은 장치가 움직이고 있다. 그 가운데 작은 부품 하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도 난자는 마지막 성숙 문턱을 넘지 못할 수 있다.
이번 연구가 찾아낸 TUBB8은 바로 그 ‘멈춤’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유전적 단서 가운데 하나다.
난포는 잘 자랐는데 왜 수정할 성숙 난자가 없었을까. 그 답이 난포의 크기가 아니라, 현미경으로도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난자 속 ‘분열 장치’에 숨어 있었던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