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내막이 얇아서 이번에도 이식을 미뤄야 합니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는 환자에게 자궁내막 두께는 민감한 숫자다. 배아가 아무리 좋아도 배아를 받아들일 자궁내막이 충분히 자라지 않으면 이식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차례 호르몬 치료에도 내막이 7㎜ 안팎을 넘지 못하면 실데나필, 과립구집락자극인자(G-CSF), 혈소판풍부혈장(PRP) 같은 이른바 ‘내막 보강 치료’를 고민하게 된다.
그 가운데 최근 몇 년간 가장 주목받은 방법 중 하나가 자신의 혈액에서 혈소판을 농축해 자궁 안에 넣는 PRP(Platelet-Rich Plasma/혈소판풍부혈장)다. 혈소판에 포함된 각종 성장인자와 사이토카인이 손상된 조직의 재생과 혈관 형성을 돕는다는 원리를 자궁내막에 적용한 것이다.
실제 작은 연구들을 중심으로 “내막이 1~2㎜ 두꺼워졌다”, “취소됐던 이식이 가능해졌다”는 결과가 잇따르면서 난임 현장에서 사용이 늘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였다. 내막이 두꺼워지는 것과 실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은 같은 결과인가.
내막은 확실히 자랐다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답한 다기관 연구가 나왔다.
국제학술지 퍼틸리티 앤드 스테릴리티(Fertility and Sterility)에 8월 5일 온라인 발표된 연구에서 스페인 IVIRMA 연구진 등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난임센터에서 시행된 배아이식 280회를 분석했다.
연구 대상은 이식 전 자궁내막 두께가 3~6.9㎜로 얇고 이전에 두 차례 착상 실패를 경험한 여성들이었다. 이 가운데 94회는 자가 PRP를 자궁 안에 주입한 뒤 이식했고, 186회는 PRP를 사용하지 않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PRP는 ‘내막을 키우는 치료’로서는 분명한 효과를 보였다.
PRP군의 최종 자궁내막 두께는 평균 6.65±1.0㎜로 대조군의 6.12±0.65㎜보다 두꺼웠다. 이전 주기와 비교한 내막 증가폭은 더 뚜렷했다. PRP군은 평균 0.95±0.99㎜ 증가한 반면 대조군은 0.16±0.77㎜ 증가하는 데 그쳤고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쉽게 말해 PRP를 넣자 초음파에서 보이는 ‘숫자’는 좋아졌다.
그런데 임신도, 출산도 늘지 않았다
반전은 그다음에 나타났다. 내막이 더 두꺼워졌음에도 환자에게 훨씬 중요한 임신과 출산 지표에서는 PRP의 이점이 확인되지 않았다.
생화학적 임신을 비롯해 임상적 임신, 지속임신, 생아출산을 비교했지만 PRP군에서 통계적으로 유의한 향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단순 비교에서도 생화학적 임신율은 대조군 49.46%, PRP군 43.62%였고 생아출산율은 각각 36.76%와 24.47%였다.
다만 PRP군은 처음부터 내막이 더 얇고 여러 예후 요인이 달랐기 때문에 이 숫자만으로 PRP가 오히려 임신율을 떨어뜨렸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연구진이 배아와 환자 특성 등을 보정한 다변량 분석에서도 PRP 치료와 생아출산 사이에는 유의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PRP의 생아출산 보정 오즈비(aOR)는 0.56이었지만 95% 신뢰구간이 0.30~1.05로 1을 포함했고 통계적 유의성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오히려 생아출산 결과에는 PRP 사용 여부보다는 난자 기원 등 배아와 관련된 요인의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진 역시 이번 결과가 “내막 두께만 증가시키면 곧바로 임신과 출산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단순한 해석에 주의를 요구한다고 봤다.
‘7㎜’라는 숫자가 임신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얇은 자궁내막이 낮은 착상률과 연관된다는 연구는 적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관성’과 ‘원인’을 구별하는 것이다. 내막이 얇은 환자의 임신율이 평균적으로 낮다고 해서 약이나 시술로 두께만 인위적으로 늘리면 임신율도 같은 폭으로 올라간다고 볼 수는 없다.
초음파에서 측정되는 내막 두께는 자궁내막 상태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착상에는 배아의 염색체 상태와 발달 능력, 자궁내막의 분자적 수용성, 배아와 내막 사이의 신호 교환, 모체의 연령과 난자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내막을 6㎜에서 7㎜로 만드는 것과 ‘착상 가능한 내막’으로 만드는 것이 반드시 같은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번 연구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PRP가 내막을 두껍게 만드는 생물학적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초음파에서 1㎜가 늘었다’는 대리지표의 개선이 곧바로 생아출산이라는 최종 임상 결과의 개선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PRP가 ‘쓸모없다’는 결론도 아직 이르다
이번 연구 하나로 PRP 치료 자체를 무효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무작위배정시험이 아니라 과거 진료기록을 분석한 후향적 연구이고 PRP군과 대조군의 초기 조건도 완전히 같지 않았다. 센터마다 PRP 주입 시점과 양, 자궁내막 준비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연구진 역시 이런 한계를 명시했다.
전체 연구 문헌도 아직 한쪽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2026년 발표된 무작위시험 중심의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PRP가 내막 두께를 개선할 가능성은 확인됐지만 임상적 임신 등 주요 결과에 대한 근거 확실성은 ‘매우 낮음’으로 평가됐다.
특히 생아출산을 보고한 무작위시험이 두 편에 불과해 안정적인 통합분석조차 하기 어려웠다. 연구진은 현재 근거만으로 PRP가 임신이나 생아출산을 높인다고 확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결론냈다.
따라서 이번 연구의 의미는 “PRP는 효과가 없다”가 아니다. 더 정확한 결론은 “PRP는 얇은 내막을 실제로 두껍게 만들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임신과 생아출산이 늘어난다고 말할 근거는 아직 없다”는 데 있다.
난임 치료에서 환자가 원하는 결과는 초음파 화면에 찍힌 ‘7㎜’라는 숫자가 아니다. 결국 임신이 유지되고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다.
이번 다기관 연구는 난임 치료의 평가 기준 역시 ‘내막이 얼마나 두꺼워졌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래서 실제 출산이 늘었느냐’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