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아기시술(IVF)에서 배아가 한두 번 착상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반복착상실패’라는 진단을 붙이고 자궁내막 수용성검사(ERA), 자궁내막 스크래치, 면역검사와 면역주사, 혈전검사와 항응고제까지 줄줄이 추가하는 진료 관행에 미국생식의학회(ASRM)가 제동을 걸었다.
ASRM 실무위원회(Practice Committee)는 2026년 발표한 ‘반복착상실패 위원회 의견(Recurrent implantation failure: a committee opinion)’에서 RIF의 정의부터 검사와 치료까지 기존 연구를 전면 검토했다. 이 문서는 국제학술지 퍼틸리티 앤드 스테릴리티(Fertility and Sterility) 2026년 8월호에도 실렸다.
반복착상실패 기준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몇 번 실패해야 반복착상실패인가’에 대한 기준이다. ASRM은 좋은 질의 배반포를 이식했을 때 누적 임신검사 양성 확률이 95%에 이를 만큼 충분한 수의 배아를 이식했음에도 착상이 일어나지 않은 경우를 RIF로 정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 자료를 적용하면 염색체가 정상으로 확인된 정상배아의 경우 대략 3~6회 이식에 실패한 뒤에야 RIF를 고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검사하지 않은 배아는 여성의 나이에 따라 필요한 이식 횟수가 달라진다.
즉 정상배아 한두 개가 착상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내막에 문제가 있다’, ‘면역이 배아를 공격한다’, ‘착상창이 어긋났다’고 단정해 광범위한 검사와 치료를 시작하는 접근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ERA의 허상?
그동안 반복착상실패 환자에게 많이 거론됐던 검사 가운데 하나가 자궁내막수용성분석(Endometrial Receptivity Analysis·ERA)이다. 자궁내막에서 248개 유전자의 발현을 분석해 내막이 배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점을 추정하고, 결과에 따라 프로게스테론 투여시간과 배아이식 시점을 조정하는 검사다.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실제로 늘리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ASRM이 검토한 연구에서는 초기 소규모 연구에서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이후 연구에서는 일관된 효과가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31개 기관에서 여성 767명을 대상으로 정상배아를 이식한 무작위시험에서는 ERA 결과에 맞춰 이식시간을 조정한 여성과 표준적인 시간에 이식한 여성 사이에 생아출산율의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후속 분석에서 ERA가 착상실패를 예측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AUC도 0.52에 불과했다.
ASRM의 결론은 명확하다. “RIF 환자에서 ERA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뒷받침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내막 스크래치’ 비권고
자궁내막 스크래치(endometrial scratching)에 대해서는 표현이 더 강하다.
스크래치는 이식 전에 자궁내막에 의도적으로 작은 손상을 만들어 염증반응과 성장인자 분비를 유도하면 착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에서 시작됐다. 일부 작은 연구에서 효과가 보고됐지만 대규모 연구 결과는 달랐다.
여성 1364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무작위시험에서는 스크래치를 시행해도 생아출산율이 개선되지 않았고, 이전에 두 차례 이상 동결배아이식에 실패한 여성에서도 이득이 확인되지 않았다.
ASRM은 이를 종합해 “자궁내막 손상은 효과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RIF 치료로 권고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IVIG·인트라리피드·G-CSF…‘면역치료 패키지’도 근거 부족
착상실패가 반복되면 NK세포 등 면역검사를 시행하고 인트라리피드, 정맥면역글로불린(IVIG), 과립구집락자극인자(G-CSF) 등의 면역치료를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ASRM은 이 역시 일괄적인 사용을 지지하지 않았다.
인트라리피드는 RIF 환자에게 권고할 근거가 부족하고, G-CSF 역시 현재 사용을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IVIG도 RIF 치료로 권고되지 않는다. 일부 면역조절제가 특정 환자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어떤 환자에게 어떤 치료가 효과적인지를 확인할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원회는 최종적으로 “RIF 환자에서 면역치료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지지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정리했다.
최근 관심이 커진 자궁내 PRP 역시 같은 선상에 놓였다. 일부 연구에서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RIF의 정의와 투여량, 투여시점이 제각각이고 대조군이 없는 연구도 많아 현재 RIF 환자에게 사용을 지지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ASRM은 판단했다.
RIF와 APAS 검사
반복착상실패 환자에게 혈액응고 이상을 의심해 항인지질항체증후군(APAS) 검사를 시행하거나 아스피린, 헤파린, 저분자량 헤파린인 에녹사파린 등을 경험적으로 사용하는 접근에도 선을 그었다.
ASRM은 항인지질항체증후군과 RIF 사이에 뚜렷한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항인지질항체증후군이 없는 여성에게 헤파린이나 저분자량 헤파린을 투여한 연구도 일관된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RIF 여성 모두에게 APAS 검사를 일상적으로 시행할 근거가 부족하고 항응고제를 일상적으로 사용할 근거 역시 충분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항인지질항체증후군 등 명확한 의학적 적응증이 있는 환자의 항응고 치료까지 부정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별다른 근거 없이 ‘착상이 안 됐으니 혹시 혈전 때문일 것’이라는 가정 아래 모든 환자에게 검사와 약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BCL-6와 PGT-A
자궁내막증 가능성을 추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BCL-6 검사도 일상검사 목록에서는 빠졌다. ASRM은 BCL-6 검사의 타당성과 검사 결과에 따른 치료 효과를 둘러싼 연구가 서로 충돌한다며 RIF 여성에게 BCL-6를 일상적으로 검사하는 것을 권고하지 않았다.
배아의 염색체 수 이상을 검사하는 착상전유전검사(PGT-A)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염색체 이상 배아가 착상실패의 중요한 원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PGT-A를 시행하는 것 자체가 RIF 환자의 최종 생아출산 가능성을 높인다는 증거는 현재 없다.
ASRM은 아직 PGT-A를 하지 않은 배아를 반복적으로 이식해 실패한 환자라면 배아의 염색체 상태가 원인인지 알아보기 위해 충분한 설명과 상의 아래 PGT-A를 선택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PGT-A가 RIF 환자의 생아출산 가능성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없다”고 명시했다.
“근거 있는 것부터 보라”
이번 문서를 모든 검사를 하지 말라는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ASRM은 반복착상실패가 의심되면 환자의 나이와 병력, 이전 IVF 과정, 배아의 질과 염색체 상태, 이식 과정 등을 먼저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IF가 확인된 여성에서는 자궁강과 난관을 초음파자궁조영술(SHG), 자궁경, 자궁난관조영술(HSG), 3차원 초음파 등으로 다시 평가하는 것도 합리적이라고 봤다.
자궁내 용종이나 점막하근종처럼 착상을 방해할 수 있는 구조적 이상이 확인된다면 치료를 고려할 수 있다. 부모의 구조적 염색체 이상을 확인하기 위한 핵형검사 역시 상황에 따라 검토할 수 있다.
핵심은 ‘더 많이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ASRM은 충분한 병력 검토와 평가에도 교정 가능한 뚜렷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광범위한 검사를 계속 확대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많은 환자가 이후 이식에서 임신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추가적인 배아이식을 계속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했다.
착상에 실패한 환자에게는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진다. 새로운 검사 하나, 새로운 주사 하나를 추가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도 생긴다. 그러나 이번 ASRM 문서는 바로 그 지점에 질문을 던진다.
착상 실패가 반복됐다는 사실만으로 아직 입증되지 않은 원인을 만들어내고 검사와 치료를 끝없이 덧붙이는 것보다, 정말 반복착상실패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하고 근거가 있는 원인을 차례로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난임 치료에서 ‘적극적으로 한다’는 말이 반드시 더 많은 검사와 더 많은 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하지 않는 것 역시 근거중심의 적극적인 진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