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난임 분야에서 NK세포(Natural Killer Cell) 활성도 검사에 따른 처방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는 과잉입니다. 심지어 NK세포를 ‘태아 살해 세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처구니없는 표현이에요. 몇 년 전 유럽 난임학회(ESHRE)와 미국 생식의학회(ASRM)에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는데 혈액 내 NK세포 수치와 활성도 검사는 면역학적으로 초래되는 유산의 진단과 치료법으로 추천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 검사법이 이뤄지고 있어요. 생식면역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이해가 안 되는 일이죠.”

습관성 유산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최범채 광주 시엘병원 원장은 난임 전문의들의 유산 진단과 치료 방식에 대해 적잖은 불만을 토로했다. 25년 넘게 시험관아기 시술(IVF)을 3만례 이상 시술하며 온갖 예외적 상황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유독 면역 불균형에 대한 유산 진단과 치료 방식만큼은 지극히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의료에서 생식면역학만큼 공부할수록 정답을 찾기 힘든 분야가 없다는 게 이유다. “생명 잉태를 돕는 난임 의술은 실험적 정신보다는 과학적 접근과 통계를 더 신뢰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최 원장에게 유산 극복 방법에 대해 들었다.

 

NK세포와 유산의 상관관계

 

―유산 원인에서 NK세포 활성화 얘기가 빠지지 않는데, NK세포가 무엇인가요.

자연살해세포라고 해서, 우리 몸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림프구의 일종입니다. 바이러스나 종양(암세포) 같은 비정상 세포를 파괴하는 역할을 하죠.

 

자연살해세포는 비정상 세포를 인지하면 퍼포린이라는 단백질로 비정상 세포의 세포막에 구멍을 뚫고 그랜자임이라는 효소를 넣어 세포질을 해체함으로써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NK세포가 너무 활성화되면 착상된 배아를 적(敵)으로 여기고 공격한다고 하던데요.

불확실한 이야기입니다. 임신상태에서는 태반이 태아와 모체의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해 태아를 보호합니다. 물론 반복적으로 유산하는 여성의 자궁 영양막에서 NK세포가 일반 여성보다 증가해 있긴 해요. 하지만 NK세포 활성화로 인해 유산이 된 것인지, 유산의 결과물로 NK세포가 늘어난 것인지 아직 규명되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자궁내막에 존재하는 NK세포의 분포·모양과 말초혈액에 존재하는 NK세포의 분포‧모양은 겨우 10% 정도만 일치한다고 알려 있지요. 따라서 혈액 내 NK세포 활성화로 인해 유산이 반복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요. 말초혈액의 NK세포 분포로 유산 기전을 설명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합니다.

 

―세계적인 난임학회에서도 그렇게 보는 건가요.

그렇죠. 1950년부터 2011년까지 NK세포에 관한 783개 연구보고 중 과학적 분석을 충족한 12개 논문을 분석한 결과, 말초혈액에서 채취한 NK세포 표현(phenotype)과 세포독성(cytotoxic) 검사는 습관성 유산 진단을 위한 의미 있는 검사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런데도 우리나라 일부 난임 전문의들은 NK세포 활성화 수치가 12 이상이면 유산 방지 차원에서 면역 처방을 내리고 있어요. 비과학적이고 한정된 지식으로 임상 치료에 임하는 것이 참으로 우려됩니다. NK세포 검사는 실험적인 차원이지 임상에서의 적용이 공인되지 않았습니다.

 

―유산이 반복되면서 NK세포 활성화 수치가 높게 나오면 유산 방지를 위해 백혈구 주입법, 인혈청 면역글로불린 처방, 인트라리피드 처방 등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요.

유럽 난임학회와 미국 생식의학회에서는 NK세포 검사가 습관성 유산의 진단법으로 공인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9년 미국국립보건원(NIH)에서는 백혈구 주입법이 원인불명 습관성 유산 환자에게 효과적 치료법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혈청 면역글로불린 처방도, 인트라리피드 처방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면역 치료의 효과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위약 대조군과 비교에서 월등한 효능이 입증되어야 하며, 환자 대상군 선정에서도 무작위로 해야 해서 치료 진행에 관해서도 의사와 환자의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처방은 유산 경험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잠재우고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것일 뿐,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없습니다.

 

―NK세포 활성화 수치가 높아지는 이유는 뭔가요.

NK세포 활성화 수치는 언제든 높아질 수 있어요. 스트레스, 생리 주기, 성관계, 질염 등으로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뇌 과학자들은 웃을 일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웃으라고 합니다. 웃을 때 엔도르핀이 많이 나오고 면역력이 좋아지기 때문인데, NK세포가 활성화한다는 의미입니다. 감기나 폐렴과 같은 감염성 질환에 걸려도 NK세포 수치가 높아집니다. NK세포는 우리 몸을 적(바이러스, 균 등)으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수행해요. NK세포가 활성화되었다고 해서 겁낼 필요가 없어요.

 

반복 유산을 막을 방법

 

―그렇다면 유산의 원인은 무엇인가요.

착상 초기에 유산이 되는 것은 배아의 세포분열 실패가 대표적입니다. 둘째, 임신 12주 이전에 심각한 기형이거나 염색체 이상이 있을 때 우리 몸은 유산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셋째, 면역학적 문제가 있으면 유산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부부 중 염색체 이상이 있는 경우 배아 염색체 이상으로 유산 확률이 높아집니다.

 

―면역 불균형 상태이거나 각종 면역질환 환자가 유산이 잘 되는 이유는 뭔가요.

반복 유산자 중에 종종 면역검사에서 자가면역 항체(루프스항체, 항인지질항체)가 양성인 경우가 있는데, 솔직히 이것이 초기 유산을 초래할 가능성은 적어요. 오히려 임신 중기(16~20주) 태아 사망에 깊은 관련이 있지요. 자가면역질환은 외부로부터 내 몸을 공격하는 항원(외부의 적)에 대항해야 할 면역세포가 오히려 내 몸의 세포나 장기를 공격하는 상황인데,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해서 모두 유산을 초래하지는 않아요. 따라서 무분별한 자가면역 검사(류마티스항체, 항핵항체 등)는 학술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다만, 자가면역 항체 중 루프스항체, 항인지질항체가 양성인 경우는 태반 미세혈관 벽에 손상을 줘 혈전을 초래하고 정상적인 혈액순환을 방해해 유산을 초래할 수는 있어요. 이 경우 면역 치료(유아용 아스피린, 면역글로불린, 헤파린 주사)를 받으면 유산을 막는 데 효과적입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모든 면역 치료는 효과와 부작용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의사는 치료 전에 환자에게 충분한 이해와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반복 유산을 막을 방법은 없는 건가요

유산이 3회 이상 반복되면 검사를 통해 원인을 추적해야 합니다. 기본검사로 호르몬검사(당뇨, 갑상선 호르몬 검사), 자궁 내 세균 감염, 자궁 해부학적 검사(자궁난관조영술, 자궁내시경검사), 자가면역 검사(루프스항체, 항인지질항체), 유전적인 혈전 검사, 부부염색체 검사 등을 추천합니다. 원인불명의 습관성 유산 중 40∼60%는 면역학적인 기전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학자들이 끊임없이 진단법과 치료법을 제시해서 기존 이론을 뒤엎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임상적으로 적용이 되려면 국제적인 교과서(Novac’s Gynecology)에서 공인되어야 합니다. 그전에는 실험적인 접근을 함부로 적용하거나 상업적으로 도입하면 안 됩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염색체 이상일 경우에도 유산이 반복될 수 있지요.

유산된 태아가 염색체 이상으로 진단되는 경우는 60%이며,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부부 중 한 사람이 염색체 이상일 경우는 100쌍 부부 중 3~5쌍 정도의 빈도입니다. 염색체 이상 케이스는 주로 염색체 구조적 이상으로, 염색체 전좌(Translocation)가 흔합니다. 부모가 염색체 전좌인 경우 정상 수정란이 착상될 수도 있고, 보인자(부모의 염색체 전위와 동일)이거나 염색체 숫자가 1개 부족하거나(터너증후군) 1개 더 많은(다운증후군) 수정란이 착상될 수 있기 때문에 염색체가 정상이거나 보인자 수정란을 선택하여 임신 유지를 할 수 있어요. 단, 보인자 수정란으로 임신에 성공한 경우에는 태어날 아기가 미래에 부모가 되었을 때 또다시 반복 유산을 경험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체적으로나 정상적으로 극히 정상적이기 때문에 임신 시도를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부부 중 염색체 이상(염색체 전좌)이 발견되면 유산이 될 수 있으니 임신 시도를 하기가 두렵겠어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자연임신으로도 정상아를 출산할 수 있어요. 다만, 정상인 부부보다 유산이 반복될 확률이 높은 거죠. 사실 건강한 첫아이를 낳은 부부라도 둘째가 안 생겨 검사를 해보면 염색체 전위 진단을 받는 경우가 꽤 있어요. 요즘은 고령 부부가 많아져서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과정에서 유전적으로 기형이 초래될 수도 있고요. 만약 부모가 염색체 이상이라면 배아 자궁 내 이식 전에 착상 전 유전자진단 PGT-A를 적용해서 체외수정 시술을 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시술비용이 비싼 데다 배아세포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손상이 될 수 있어 임신 성공률이 일반적인 체외수정 시술보다 조금 떨어진다는 걸 감안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