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ChatGPT, OpenAI)을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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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은 됐는데 자꾸 멈춘다. 염색체 검사와 자궁 검사, 혈액검사까지 받아도 특별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원인불명 반복유산’ 여성들의 자궁 안에서는 임신이 착상되는 바로 그 시기에 무엇이 일어나고 있을까.

최근 연구에서 하나의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을 직접 들여다봤더니 착상기에 지방산을 만들고 사용하고 저장하는 대사 과정이 일반 여성과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2026년 국제학술지 ‘생식생물의학온라인(Reproductive BioMedicine Online·RBMO)’에 발표된 프랑스 앙제대학·앙제대학병원 연구팀의 연구다. 연구진은 보조생식술을 받는 여성 80명을 대상으로 혈액과 자궁내막의 대사체를 비교했다.

원인불명 반복유산 여성 19명, 반복착상실패 여성 41명, 남성요인 난임으로 치료받는 가임력 대조군 20명이 참여했다.

 

배란 5~9일 뒤, 바로 ‘착상창’에 자궁내막 떼어봤다

 

이번 연구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한 혈액검사가 아니라 배아가 자궁에 착상할 시기의 자궁내막 조직을 직접 분석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배란 후 5~9일, 이른바 ‘착상창(window of implantation)’ 시기에 참가자들의 혈액을 채취하고 자궁내막 조직을 생검했다. 이후 고성능 액체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아미노산과 지방산, 인지질, 세라마이드, 중성지방 등 최대 630종의 대사체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혈액에서는 494종, 자궁내막에서는 228종의 대사체가 안정적으로 측정됐다. 연구진은 통계 분석에 머신러닝까지 적용해 세 집단의 대사 패턴이 실제로 구분되는지를 살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반복착상실패 여성에서는 혈액이나 자궁내막 모두 대조군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대사체 패턴을 찾아내지 못했다. 반면 원인불명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에서는 뚜렷한 대사 특징이 나타났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특징이 혈액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몸 전체의 혈액 대사가 크게 다른 것이 아니라 임신이 시작되는 현장인 자궁내막에서 국소적인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자궁내막 지방 대사에서 16개 ‘핵심 물질’ 포착

 

연구진은 여러 분석을 거쳐 원인불명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을 구분하는 데 중요한 16개 핵심 대사체를 추려냈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아실카르니틴(acylcarnitine)’이었다. 특히 중간 길이의 지방산과 관련된 중쇄 아실카르니틴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반대로 일부 디글리세리드와 트리글리세리드, 즉 지방을 저장하는 형태의 지질은 증가했다. 일부 인지질과 세라마이드도 높게 측정됐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들을 종합할 때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에서 ​지방산 대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지방은 단순히 몸에 쌓아두는 에너지원이 아니다. 세포가 에너지를 만들고 세포막을 구성하며 여러 신호를 주고받는 데 사용된다. 특히 임신 초기 자궁내막 세포가 배아를 받아들이기 좋은 상태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에너지 대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에서는 지방을 운반하고 태우는 과정과 저장하는 과정의 균형이 일반 여성과 다르게 나타난 것이다.

 

착상 후 배아를 품는 ‘탈락막화’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

 

연구진이 특히 주목한 것은 탈락막화(decidualization)​다.

배란이 끝나고 프로게스테론이 증가하면 자궁내막의 기질세포는 임신을 준비하는 특별한 세포로 바뀐다. 이를 탈락막화라고 한다. 단순히 내막이 두꺼워지는 과정이 아니다. 배아가 들어왔을 때 영양을 공급하고 지나친 침투를 조절하며 면역반응까지 조절하는 일종의 ‘임신 준비 모드’다.

연구진은 이번에 발견된 지방산 대사 이상이 자궁내막 세포의 탈락막화 과정과 연관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중쇄 지방산의 생성이나 이용이 충분하지 않다면 세포 분화와 에너지 공급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이것이 반복적인 배아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것이 곧바로 ‘지방산 부족이 반복유산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번 연구는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에서 특정 대사 패턴이 함께 나타났다는 것을 확인한 관찰연구다. 지방산 대사를 바꾸면 유산을 막을 수 있는지, 특정 음식이나 오메가3 같은 영양제를 복용하면 결과가 좋아지는지를 시험한 연구도 아니다.

따라서 이번 결과를 근거로 특정 지방이나 영양제를 먹으면 반복유산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반복착상실패와 반복유산은 같은 병이 아닐 수도

 

이번 연구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반복착상실패와 반복유산의 결과가 달랐다는 점이다.

두 질환은 난임 진료실에서 흔히 함께 언급된다. 하나는 배아가 반복적으로 착상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임신이 시작된 뒤 반복적으로 소실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는 반복착상실패 여성에게서는 연구진이 찾고자 했던 뚜렷한 대사체 특징이 발견되지 않은 반면, 원인불명 반복유산 여성에서는 자궁내막 지방산 대사의 특징이 확인됐다.

이는 ‘착상이 안 되는 것’과 ‘착상 후 임신이 유지되지 않는 것’의 생물학적 배경이 반드시 같지는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혈액검사는 정상인데…” 자궁 안에 답이 있을까

 

반복유산 환자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순간은 여러 검사를 받고도 “특별한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다.

염색체 이상이나 자궁기형, 항인지질항체증후군, 내분비질환 등 알려진 원인을 모두 살폈는데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반복유산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환자에게서 혈액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자궁내막 자체의 대사환경 차이를 찾아냈다는 데 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향후 자궁내막 수용성을 평가할 새로운 생체지표를 개발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실제로 이번 연구에서 16개의 대사체 조합은 원인불명 반복유산 여성의 자궁내막을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제 난임병원에서 자궁내막 대사체 검사를 통해 반복유산을 진단하거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려면 훨씬 큰 규모의 후속 연구와 외부 검증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 역시 반복유산군이 19명에 불과해 결과를 전체 반복유산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이번 연구는 반복유산의 원인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 단계 넓힌다.

임신이 반복해서 멈출 때 문제의 답을 배아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라, 그 배아를 받아들이고 임신을 유지해야 하는 자궁내막의 세포와 에너지 대사까지 들여다봐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반복유산의 실마리가 어쩌면 ‘착상되는 며칠 동안 자궁내막 세포가 지방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는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