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검사에서는 운동성이 50%가 넘었는데 이번에는 20%도 안 된다고 합니다. 갑자기 정자가 나빠진 걸까요?”
난임 치료를 받는 부부들이 남성 정액검사 결과를 받아들고 자주 하는 질문이다. 같은 남성이 비슷한 시기에 검사를 받았는데도 정자 수와 운동성이 검사 때마다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액검사는 혈액형처럼 고정된 수치라기보다 혈압처럼 몸의 상태와 검사 조건에 따라 움직이는 생물학적 지표에 가깝다.
미국비뇨기과학회(AUA)와 미국생식의학회(ASRM)의 남성난임 진료지침에서도 정액검사 지표는 사정할 때마다 상당히 달라질 수 있는 ‘변동성이 큰 생물학적 측정치’라고 설명한다. 첫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됐다면 한 번의 검사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보다 반복 검사를 권하는 이유다.
스트레스 받았던 달, 운동성이 떨어진 것도 우연일까
최근 연구에서는 심리적 스트레스와 정액검사 결과의 연관성도 확인되고 있다.
2026년 ‘브라질 보조생식학회지(JBRA Assisted Reproduction)’에 발표된 체계적 문헌고찰은 34개 연구, 남성 1만1141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심리적 스트레스를 다룬 연구 가운데 63.3%에서 스트레스와 정자 운동성 저하 사이의 연관성이 관찰됐다. 정자 농도는 52.9%, 총정자수는 56.3%의 연구에서 좋지 않은 방향의 연관성이 나타났다.
업무 스트레스뿐 아니라 일상생활 스트레스, 시험이나 학업 스트레스, 난임 치료 과정에서 받는 스트레스, 큰 생활사건 등이 포함됐다. 다만 연구 대부분이 관찰연구인 만큼 “스트레스가 정자를 직접 나쁘게 만든다”고 인과관계를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난임 치료 중 남편이 과로와 수면 부족, 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던 시기에 정자 운동성이 낮게 나왔다고 해서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의미다.
정자는 검사 당일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환에서 만들어져 성숙 과정을 거쳐 사정되기까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최근 몇 달 동안의 건강상태와 생활환경이 검사 결과에 흔적을 남길 수 있다.
독감 앓고 난 뒤 정자가 확 나빠질 수도
그중에서도 비교적 영향이 뚜렷한 것이 고열이다.
건강한 남성 27명을 16개월 동안 추적한 연구에서는 발열을 경험한 뒤 정자 농도가 약 33~35% 감소했고 움직이지 않는 정자의 비율도 증가했다. 연구진은 발열이 정자 생성 과정의 특정 단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39도 이상의 고열이 3일 이상 지속됐던 남성들을 조사한 다른 연구에서는 발열 후 3~6주 사이 정자 농도와 빠른 진행운동성이 크게 떨어졌다가 이후 4~6개월에 걸쳐 회복되는 양상이 관찰됐다.
따라서 독감이나 코로나19, 심한 감염 등으로 고열을 앓은 뒤 정액검사를 받았다면 그 결과가 평소보다 나쁘더라도 이를 곧바로 영구적인 정자 기능 저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며칠 참았으니 정자가 더 좋겠지”…꼭 그렇지 않다
금욕기간도 정액검사 성적표를 흔드는 중요한 변수다.
대개 오래 금욕할수록 정자가 많이 모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자 ‘수’와 ‘질’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2024년 13개 연구, 2315명을 분석한 메타분석에서는 금욕기간이 길수록 정액량과 정자 농도는 높아졌지만 진행운동성은 낮아지고 정자 DNA 분절은 증가했다. 또 85개 연구를 분석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특히 남성난임 환자에서는 비교적 짧은 금욕기간이 일부 정자 지표에 유리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즉 “일주일을 참았으니 이번 정자는 최고일 것”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기 어렵다.
채취 과정 하나만 달라도 결과가 바뀐다
검사실 밖의 문제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액검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채취 조건과 분석과정을 표준화하도록 하고 있다. 금욕기간은 물론 채취 시각, 정액이 빠짐없이 용기에 들어갔는지, 채취부터 검사까지 걸린 시간 등의 조건을 기록하도록 하는 이유다.
특히 정액 일부를 흘려 완전하게 채취하지 못했거나 검사실까지 이동 시간이 길어진 경우, 이전 검사와 조건이 달랐다면 결과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결국 정액검사에서 운동성 15%가 나왔다고 해서 그 남성의 정자가 언제나 15%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한 번 60%가 나왔다고 해서 항상 그 수준이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와 수면, 최근의 발열이나 감염, 금욕기간, 음주와 생활습관, 채취 상태와 검사 조건이 겹치면서 그날의 ‘정자 성적표’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남성난임을 판단할 때는 한 번의 숫자보다 흐름을 봐야 한다. 정자 농도와 총정자수, 진행운동성, 정상 형태율 등을 함께 살피고 첫 검사에서 이상이 크다면 일정한 조건에서 다시 검사해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액검사표의 숫자가 한 번 크게 떨어졌다고 해서 “정자가 망가졌다”고 낙담할 필요도, 한 번 잘 나왔다고 안심할 일도 아닌 셈이다. 정자검사는 한 장의 성적표보다 여러 번 찍어 본 ‘연속 사진’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