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아기를 안고 돌떡이라며 백설기를 들고 온 엄마가 있었다. 그를 보면서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궁에 심한 기형이 있었고, 난관이 막혀 물이 차는 난관수종과 임신을 방해하는 자궁내막증이 있었다. 이른바 ‘난임 종합선물세트’를 모두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두 차례나 임신 20~30주에 유산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6년간의 노력 끝에 끝내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것이다. 첫돌이 된 아이를 안고 병원을 들어서는 모습은 난임 치료 전문의로서 큰 감동이었다.
만약 이 세상에서 마초이즘(machoism)과 페미니즘(feminism) 중 선택하라면 나는 페미니즘을 택할 것이다. 사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남성을 위해 남성들이 만든 것이지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우월하다. 난자(생식세포)는 생명 잉태를 위한 재료와 연료를 모두 갖춘 데 비해, 정자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자도 중요하다. 생명에 꼭 필요한 화룡점정(畵龍點睛) 역할을 한다. 난자가 위대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이지만 정자 없인 죽도 밥도 안 된다. 하나가 없으면 백이 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생명을 잉태해서 낳고 키우는 일에서 여성의 업적은 남다르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는 가장의 처지에선 발끈할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인 설명을 들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생식세포로 따져보자. 정자는 수정되면서 난자에게 핵(염색체, DNA)을 넘겨주면 끝이다. 반면 난자는 핵 외에 세포질과 미토콘드리아가 있어 수정 이후 큰 역할을 담당한다. 즉 난자는 정자로부터 받은 핵 50%에 자신의 핵(50%)을 보태 완전한 핵이 되면 이때부터 오로지 난자의 힘으로 생명을 완성한다.
핵은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면이다. 즉 정자와 난자의 핵이 만나(수정) 완벽한 세포 설계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한쪽은 아버지에게서, 다른 한쪽은 어머니에게서 받아 23쌍의 염색체(46개 염색체)가 된다. 유전자(DNA)는 23쌍 염색체 안에 잘 보관돼 있다. 23개 염색체가 두 개씩 한 세트가 되는 이유는 한쪽의 유전자에 문제가 있더라도 다른 한쪽의 유전자가 대신하는 데 있다. 일종의 생명 연장을 위한 안전장치인 셈이다. 따라서 난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유전자를 대물림하고 싶어도 난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우수한 유전자라고 해도 생명이 될 재료와 연료가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제아무리 ‘레시피’가 좋아도 재료와 연료 없이 요리를 만들 수 없고, 완벽한 설계도면이 있더라도 집 지을 땅과 재료가 없으면 건축을 완성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세포의 근원(세포질)과 연료(미토콘드리아)가 모두 난자에게 있다. 단 1개의 세포(수정란)였는데, 수정 이후 2개, 4개, 8개, 16개로 체세포분열을 해나갈 수 있는 것도 난자 덕분이다. 세포분열은 세포가 나뉘어 쪼개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가 복제를 해 온몸의 세포를 최초의 세포(수정란)와 동일하게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는 미토콘드리아의 업적이다.
물론 정자 역시 생명 잉태 과업에 없어서는 안 된다. 난자는 정자 없이 완전한 핵(23쌍 염색체)을 완성하지 못한다. 생식세포(정자, 난자)에는 감수분열로 인해 절반의 유전자만 담겨 있기에, 정자와 수정이 되지 않으면 완전한 핵이 될 리 없다. 어쩌면 인간이 저도 모르게 자신을 채워줄 반쪽을 그토록 기다리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