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관을 제거해도 시험관아기시술(IVF)로 임신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일부 난임 전문의들은 나팔관에 문제(수종 등)이 있다고 해서 나팔관 제거술을 서두르지 말라고 권고할까.

그 이유는 나팔관 자체보다 나팔관과 가까이 붙어 있는 난소, 그리고 난소에 혈액을 공급하는 미세혈관에 있다.

나팔관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이뤄지고, 수정란이 자궁으로 이동하는 통로다. 더 쉽게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미팅장소다. 그래서 자연임신과 인공수정시술에서는 나팔관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체외수정술인 IVF은 난자를 몸 밖에서 수정시킨 뒤 배아를 자궁에 직접 이식하기 때문에 나팔관이 없어도 임신이 가능하다.

그러나 나팔관이 자연임신에 반드시 필요한 기관이라는 사실과 나팔관을 제거해도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특히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난자 채취량이 적은 여성에게는 나팔관 제거술이 향후 난임 치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중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팔관과 난소는 혈관을 공유한다

 

나팔관과 난소는 해부학적으로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다. 난소는 주로 난소동맥과 자궁동맥의 분지를 통해 혈액을 공급받는데, 나팔관 주변에도 이들 혈관에서 갈라진 미세혈관이 분포한다.

나팔관을 제거하는 과정에서는 출혈을 막기 위해 주변 조직의 혈관을 절단하거나 전기소작으로 지혈해야 한다. 이때 수술 범위와 방법에 따라 난소로 향하는 일부 혈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난소는 혈액을 통해 산소와 영양분, 호르몬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난소 주변 혈관의 손상은 난포 발달과 난소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다만 나팔관을 제거하면 반드시 난소 혈류가 감소하거나 난소 기능이 저하된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 임상 연구에서는 수술 전후 난소 기능에 뚜렷한 차이가 없었다는 결과도 보고돼 있다.

 

AMH 감소 가능성…연구 결과는 엇갈려

 

나팔관 제거술과 관련해 난임 의료진이 주목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는 항뮐러관호르몬(AMH)이다. AMH는 난소에 남아 있는 난포의 양을 간접적으로 평가하는 지표로, 난소예비력을 판단할 때 활용된다.

일부 연구에서는 나팔관 제거술을 받은 여성의 AMH가 수술 전보다 감소하거나 수술받지 않은 여성보다 낮게 나타났다. 특히 양쪽 나팔관을 모두 제거하는 수술이 난소예비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집중됐다.

반면 수술 전후 동일한 여성을 비교한 연구에서는 AMH가 유의하게 감소하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다. 연구마다 대상자의 연령과 기저질환, 수술 방법, 추적 관찰 기간이 달라 결과를 일률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또한 AMH가 낮아졌다고 해서 난자의 질이나 자연임신 가능성이 같은 비율로 떨어진다는 의미도 아니다. 난소예비력과 실제 임신·출산 성과는 구분해서 평가해야 한다.

 

난관수종이 있다면 오히려 제거하는 편이 유리할 수도

 

그렇다면 나팔관은 가능한 한 보존하는 것이 좋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표적인 예외가 난관수종이다. 난관수종은 나팔관이 막히면서 내부에 액체가 고이는 질환이다. 이 액체가 자궁 안으로 역류하면 배아 착상에 불리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난관수종이 있는 여성에서는 시험관아기 시술의 임신 성공률이 낮아질 수 있으며, 배아이식 전 문제가 있는 나팔관을 제거하거나 자궁과의 연결을 차단하면 임신 결과가 개선될 수 있다는 근거가 축적돼 있다.

따라서 난관수종이 확인된 환자에게는 나팔관 제거술이 오히려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치료가 될 수 있다.

다만 난관수종의 정도와 위치, 수술 위험도, 난소예비력 등을 고려해 난관 절제술과 근위부 난관 폐쇄술 등 치료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나팔관 제거술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나팔관이 막혔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난관수종이 없고 단순한 난관 폐쇄만 확인된 경우에는 수술의 이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미국생식의학회(ASRM)는 2021년 난관질환 진료 권고안에서 다른 이상이 없는 한쪽 근위부 난관 폐쇄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또한 난관 폐쇄가 의심되더라도 검사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인 근육 수축 등으로 실제 폐쇄가 아닌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난소 기능이 떨어진 여성이라면 수술 전 평가가 더욱 중요

 

고령이거나 AMH가 낮은 여성, 이전 시험관아기 시술에서 난자 채취량이 적었던 여성은 수술 결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나팔관을 제거한 뒤 난소 기능이 반드시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난소예비력이 낮은 여성에게는 수술의 잠재적 위험과 기대되는 이득을 비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022년 일본 군마대학교 연구진이 발표한 체계적 문헌고찰 및 메타분석은 21편의 연구를 검토했다. 동일한 여성의 수술 전후를 비교했을 때는 AMH의 유의한 감소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수술받은 여성과 수술받지 않은 여성을 비교한 분석에서는 수술군의 AMH가 평균 0.31ng/mL 낮았다. 양측 난관 절제군에서는 평균 0.71ng/mL 낮게 나타났다.

다만 이 차이가 수술 자체 때문에 발생했는지, 기존 난관질환이나 다른 환자 특성 때문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 연구진 역시 결과를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데 주의를 당부했다.

 

중요한 것은 나팔관을 남기느냐가 아니라 임신 가능성을 높이느냐

 

결국 나팔관 제거술을 결정하는 기준은 나팔관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나팔관이 임신에 방해가 되는 상태인지, 제거했을 때 얻는 이득이 수술 위험보다 큰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이다.

난관수종이 배아 착상을 방해하고 있다면 수술이 시험관아기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반대로 난관수종이 없고 나팔관 제거의 명확한 의학적 이유도 없다면 불필요한 수술을 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양쪽 나팔관을 모두 제거하면 자연적인 난자 이동과 수정이 어려워져 향후 임신을 위해 시험관아기 시술에 의존해야 한다. 따라서 수술 전에는 자연임신 가능성, 난소예비력, 난관질환의 정도, 향후 임신 계획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나팔관은 시험관아기 시술에서는 없어도 되는 생식기관이다. 하지만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나팔관을 제거해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의학적으로 필요한 나팔관은 제거하되, 제거할 이유가 없는 나팔관까지 수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다.

 

※ 미국생식의학회(ASRM)의 2021년 난관 수술 진료지침과 일본 군마대학교 연구진이 2022년 ‘산부인과연구저널(Journal of Obstetrics and Gynaecology Research)’에 발표한 난관 절제술과 난소예비력 관련 메타분석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DOI: 10.1111/jog.15316, PMID: 35624527. 또한 대한남성과학회(KSSMA) 연구진이 2026년 ‘세계남성건강학회지(World Journal of Men's Health)’에 발표한 남성불임 관리 임상 권고안을 참고했습니다. DOI: 10.5534/wjmh.260149, PMID: 42533487.